희망과 절망 사이, 당나귀가 관찰한 인간세상
매번 자신에게 불리하게 달라지는 순간의 주어진 운명을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당나귀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당나귀의 울음소리에서 따온 EO라는 이름의 당나귀가 주인공이다. 그의 슬픈 눈동자에 비치는 세상은 동물의 세상이 아닌 인간들의 세상이다. 사람들의 탐욕이 그를 우울하게 하고 그에게 상처를 준다. EO는 상황의 서술자가 아닌 신중한 관찰자다. 당나귀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많은 부분, 예수를 태우고 그와 수난을 함께 했던 성경 속 당나귀를 연상시킨다. 폴란드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EO의 여정은 흡사 예수 수난 때처럼 시련의 연속이다. 영화 ‘EO’는 붉은 조명 아래 당나귀와 여자가 교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 사이의 기류에는 묘한 성적 함의가 느껴진다. 트레이너인 카산드라와 EO는 서커스단에서 함께 생활하고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서커스장 밖에는 동물권 운동가들의 동물 서커스 반대 시위가 한창이다. 때마침 당국은 서커스단 주인의 세금 문제로 EO를 동물 보호소로 이동시킨다. 카산드라와의 이별. 프랑스의 거장 로버트 브레송 감독의 1966년작 ‘당나귀 발타자르(Au hasard, Balthazar)’를 모티브로 한 ‘EO’는 60년대에 로만 폴란스키와 함께 ‘폴란드 학파’ 세대를 대표하던 폴란드의 거장 예르지스콜리모프스키 작품이다. 지난 5월, 33년 만에 칸영화제에 최고령감독으로 컴백하여 이 작품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폴란드의 95회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EO’는 당나귀가 주인공이지만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옥자’나 ‘베이브(Babe)’와 같은 류의 동물영화는 아니다.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이 동원하는 상상력은 오히려 인간이 동물 학대에 있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폴란드를 순회하는 삶의 여정에서 EO는 선한 사람들보다 악하고 짓궂은 사람들을 만나 재앙과 절망을 경험한다. 축구경기장 밖을 배회하던 EO는 술 취한 훌리건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의식을 잃는다. 초현실적인 이미지 창출의 대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은 죽음의 순간을 오가는 EO의 무의식을 마치 연옥의 한 장면인 것처럼 표현한다.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위베르가 후반부에 예기치 않은 역으로 등장하고 동물 보호 차원에서 6마리의 당나귀가 번갈아 가며, 절망의 굴레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EO를 연기한다. 김정 영화평론가온라인 영화 당나귀가 인간세상 재앙과 절망 당나귀 발타자르 절망 사이